만가
그날이 오면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黃昏)의 거리를우리들은 동지(同志)의 관(棺)을 메고 나간다만장(輓章)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수의(襚衣)조차 못입힌 시체(屍體)를 어깨에 얹고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동지(同志)들은 옷을 벗어 관위에 덮는다.평생(平生)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상 싶어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하여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
(이하 6행은 일본 총독부 검열로 잘려져 나감)
동지(同志)들은 여전(如前)히 입술을 깨물고고개를 숙인채 저벅저벅 걸어간다.친척(親戚)도 애인(愛人)도 따르는 이 없어도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조가(弔歌)도 부르지 못하는 산 송장들은관(棺)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