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걸인

심훈 (1901–1936)

그날이 오면

나에게 무엇을 비는가?푸른옷 입은 린방(隣邦)의 걸인(乞人)이여숨도 크게 못쉬고 쫓겨오는 내 행색(行色)을 보라,선불 맞은 어린 짐승이 광야를 헤매는 꼴 같지 않으냐.

정양문(正陽門) 문루(門樓) 위에 아침 햇발을 받아펄펄 날리는 오색기(五色旗)를 치어다보라.네 몸은 비록 헐벗고 굶주렸어도저 깃발 그늘에서 자라나지 않았는가?

거리거리 병영(兵營)의 유량(嚠喨)한 나팔(喇叭) 소리!내 평생(平生)엔 한번도 못들어 보던 소리로구나호동(胡同) 속에서 채상(菜商)의 웨치는 굵다란 목청너희는 마음껏 소리 질러보고 살아 왔구나.

저 깃발은 바랬어도 대중화(大中華)의 자랑이 남고너희 동족(同族)은 늙었어도 「잠든 사자(獅子)」의 위엄(威嚴)이 떨치거니저다지도 허리를 굽혀 구구(區區)히 무엇을 비는고천년(千年)이나 만년(萬年)이나 따로 살아온 백성(百姓)이어늘―

때 묻은 너희 남루(襤樓)와 바꾸어 준다면눈물에 젖은 단거리 주의(周衣)라도 벗어 주지 않으랴마디마디 사무친 원한을 나눠 준다면살이라도 저며서 길바닥에 뿌려 주지 않으랴오오 푸른옷 입은 북국(北國)의 걸인(乞人)이여!